『고서점의 문화사』

이중연著、혜안、2007。ISBN: 9788984942981

c0019613_20352645.jpg古書の流通や収集をめぐる歴史を、朝鮮時代から1970年ごろまで扱っている。読み始める前までは、考えたことを書き綴るエッセイ風の文章かと思っていたけれど、読んでみると、資料を読み込んで、古書流通史の記述を試みている、学術的な本だった。

この本は5部に分かれていて、1部は「조선 후기, 서적유통을 꿈꾸다」、2部は「일제강점기 고서점의 풍경」、3部は「고서점의 여러 모습」、4部は「고서 수집의 역사」、5部は「헌책방 삼대」となっている。

1部の「조선 후기, 서적유통을 꿈꾸다」では、朝鮮時代後期の書籍流通を考証している。当時は、現在の書店に当たるものが発達していなくて、いわゆる訪問売買を行う책쾌(册儈)と呼ばれる行商人たちがいたが、書籍の流通を支配していた朝廷は、その支配体制を乱す책쾌の存在を快く思わず、過酷な弾圧を加えることもあった。

まず著者は、書店の起源を探る。そして、その最も古い記録として、1752年に薬契冊肆という名の書店が出てくることを突き止めている。

약계책사는 왕이 직접 죄인을 신문하는 친국(親鞫) 사건에 관계되어 등장하는 서사로, 적어도 1752년(영조 38) 이전에 존재했다. 사건이 없었다면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 그래서 존재 사실이 인멸(湮滅)되었을 이 서사는, 연대가 이르기 대문에 서시의 ‘기원’으로 파악할 수 있다. (23쪽)
その一方、책쾌(册儈)と呼ばれる書籍を売買する行商人についても言及しているけれど、この「儈」という字の発音について、一言考察を加えている。もともと“회”と読んでいた字が、“책”の後ろに来て“채쾌”と発音さ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から、「儈」は“쾌”と読まれるようになったのだろうという意見を、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현재 한글사전은 儈를 쾌로 읽고 있다. 자전(字典)은 괴로 읽고 있다. 册儈를 조선후기의 한자발음으로는 책회 또는 책괴로 표기하지만 격음화나 격음화의 결과 채쾌나 채꾀로 발음하게 된다. 册儈의 현실발음이란 결과가 무시되고 ‘儈’는 홀로일 때도 ‘쾌’로 읽는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43~44쪽)
もっとも、「儈」は現代中国語でも「快」と同じく“kuài”と発音するようなので、この考察が本当に妥当なのかどうかは、もう少し調べる必要があるかもしれない。

その「册儈」は、下級貴族の関係網を形成していたため、朝廷はそれを絶えず警戒していた。

정부・고관은 관계망 형성이 특별하지 않거나 때로 대항적이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재야 사대부 지식인은 전업 독서・저술가로서 책쾌 조생과 밀접한 관계망을 형성했다. (59쪽)
朝鮮時代は、思ったよりも言論統制が厳しかった。しかし、その中でも人々は知識を求め、本を求めていたのだった。

2部の「일제강점기 고서점의 풍경」では、日本に支配されていた時代(일제강점기)の書籍流通状況を調べている。今度は日本の朝鮮総督府が書籍の流通を支配し、始めは韓国語の本の流通を弾圧したけれど、後に緩和し、小説類は容認するようになった。しかし、30年代終わりごろからファシズムが台頭してくると、戦争を鼓舞する本だけが書店に並び、40年代頃からは、ハングルで書かれた本は古本屋で扱うことすら禁止されるようになった。しかし、人々はハングルで書かれた本を密かに手に入れて読んだ。

この章は、主題別にその歴史を追っているため、全体を編年体で書いていない。そのため、ざっと読み通すと、頭の中がごちゃごちゃになってしまう。もっとも、しっかり腰を据えて読まない私が悪いのだけれど、ここでは本の順序ではなく、年代にそって引用してみよう。

1910년대 조선인의 고서점은 힘을 잃고 거리 헌책방은 늘었다. 게다가 종로 야시가 생기자 길거리의 서적 판매는 지정된 장소에서의 노점 판매로 확장되어 갔다. (112쪽)
このように、1910年代には朝鮮人の経営する古本屋は衰退し、かわりに古本の露天商が増えたと言う。そのうえ、종로に野市が開かれると、古本の露天商はますます増えていった。野市については、「종로 야시는 1916년에 일제의 인가를 받고 시작되었다」(112쪽)と説明している。それらの露天商が扱う本は、思想性のない小説類だった。

당시 노점 헌책방이 다룬 것은 주로 신・구소설이었음도 알 수 있다. … 강점 직후 400여 종의 소설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 일제가 금서조치하고 압수에 나섰던 구국계몽운동서적, 특히 조선을 일깨우는 서적들은 노점 헌책방에서 팔 수 없었고 서점은 통해 비밀리에 유통되곤 했다. (110쪽)
一方、ソウルには日本人が入植するようになり、主に종로より南側に居を構えた。そして、当時は本町と呼ばれていた現在の충무로に、日本人の経営する書店街が形成されていた。박종화(1901~1981)は1914年に本町の本屋でその多様な本に魅了されたあと、しばしば訪れて本を買って読むようになる。

일본인은 남촌에 많은 서점을 개설했다. … 그는 이후 이곳(本町=충무로)에서 많은 책을 사서 본다. … 일본인 상대의 서점이 점차 조선인이 찾는 대상으로 돼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조선 출판・서적유통계에서 찾을 수 없는, 많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 조선인 지식층 일반이 사실상 남촌의 서점을 많이 이용했다. (122~123쪽)
しかし、その当時は韓国の出版に対する弾圧が厳しかった。もったいないことに、特に1910年代後半には、多くの漢籍が押収・焼却されたという。

강점 전후에 많은 신식 출판물을 금지시켜 구국계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압살한 일제는 1910년대 후반기에 많은 한적본을 압수・소각했다. (124쪽)
その後、종로の北側では新刊書店は衰退し、かわりに古本屋が発達してきた。관훈동、つまり인사동길の北の入り口あたりに位置する地域は、古本屋街となっていた。1940年代にはかなりの古本屋があったようだ。それについて、「관훈동을 자주 다녔던 이경훈은 당시 관훈동 골목이 거의 고서점이었다고 회고했다」(114~115쪽)と紹介している。

この時期は、出版への弾圧がある程度緩和される時期もあったけれど、30年代後半から、今度はファシズムの軍事体制が台頭し始め、出版に対する統制が厳しくなり始める。新刊書店ではほしい本が得られなくなり、古本屋が密かにそれに取って代わるようになった。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파쇼체제 하의 조선에서 판금서적은 급증했지만 고서점은 금서의 유통경로로 자리를 잡았다. 구하기 힘든 금서는 고서점에서 찾는 게 독서인의 상식이었다. 이를테면 『자본론』을 구하기 힘들지만 고서점에서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윤석헌은 인사동 고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그 때 고서점 주인은 방 벽장 속에 책을 숨겨 두고 있었다. (89쪽)
そのような状況について、ジャーナリストの송건호(1927~2001)は次のように証言している。

송건호는 중학교 때인 일제말기에 안국동・충무로(本町) 등 서울의 고서점 거리를 찾아다니며 헌책을 뒤졌다. “신간책은 거의 일본 군국주의 찬양이나 침략전쟁 찬양이나 황도정신 일색이었으나 고서점에는 아직도 자유주의 냄새를 풍기는 책들이 남아 있었다.” 그의 헌책 찾기는 점차 한글 책으로 집중되었고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한글 소설을 탐독했다. (101쪽; 송건호 ‘분단 42년과 나의 독서편력’ <역사비평> 1, 1987, 332쪽)
ハングルへの弾圧は日に日に激しくなっていき、韓国語の本は得にくくなってきた。しかし、それがかえって民族意識を鼓舞し、密かにハングルで書かれた本を読む動きへと繋がっていった。それについて、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침략전쟁과 무관한 책, 나아가 그 읽기는, 파쇼체제의 강요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일제의 파쇼적 통제가 강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자유를 향한 책 읽기의 지향이 성장했다. 일제의 황민화가 폭력으로 강제되면서, 민족 알기의 책 읽기가 확산되어 갔다. …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역으로 조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조선 읽기는 확산되었다. (95, 97쪽)
やがて、日本は太平洋戦争を勃発させ、朝鮮も軍事態勢に塗り固められていく。その中で、日本の敗北を確信してハングルで書かれた本を集め始めた古本屋があった。황종수氏の経営する일성당という古本屋だ。

주목할 사실은 그런 일성당 주인 황종수가 ‘때의 전망’을 잃지 않고 있었던 점이다. 그는 1939년에 서울로 와서 언론인과 교류하며 전쟁에 관한 정보를 듣고 일제의 패망을 확신했다 한다. 2층 다락에 한글 책을 쌓아둘 수 있었던 것은, 때의 전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91쪽)
具体的に、どのように本を集めたかが、次のように簡単に紹介されている。

(황종수는) 서점에 있던 일본 서적을 팔아서 그 자금으로 한글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우리말본』 『한글갈』 등 정음사의 책을 제본 상태로 사들이고 당시 옥고를 치르던 한글학자의 옥바라지를 위해 조선어학회가 『한글』 잡지를 팔려 할 때 힘닿는 대로 모두 사 모았다. 또 한성도서의 재고정리본인 『만세전』(염상섭), 『수양대군』(김동인), 『단종애사』, 『무정』, 『마의태자』(이상 이광수), 『전야』(박종화), 『물망초』(김억) 등의 한글문학서적을 사들였다. 즉시 그 책들을 팔려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 놓고 팔 수는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일성당은 한글 책을 서점 2층에 몰래 감추어 두었다. (90~91쪽)
このようなハングル本の密かな収集は、主に古本屋を通して行われた。

한글의 기억이 민족사상을 고취하는 길이므로 한글 책을 모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 서적의 수집은 고서점의 유통을 전제로 했다. 독서인 사이에 책을 주고받으며 읽는 경우도 있지만, 수집이라 할 때는 특정 공간, 곧 고서점에서의 매입이 우선 방법이기 때문이다. (101쪽)
とはいえ、戦時体制の厳しい言論統制の中で、流通・所持が禁止されているハングル本を得ることは易しいことではない。戦況が悪化していくにつれ、徐々に古本屋は店じまいしていった。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뒤에 전시 파쇼동원체제가 강화되면서 책은 귀해졌다. 신간은 물론이고 고서(・헌책)의 유통 또한 힘들게 되어갔다. 남촌이건 북촌이건, 고서점에 책이 없게 되고 많은 고서점이 문을 닫고 말았다. (130쪽)
3部の「고서점의 여러 모습」では、한남서림(1905~1960年代)、미모사(1936~1940?)、남만서점(1938~1940)、마리서사(1945~1948)という特定の古書店を扱い、2部と重複する部分もあるけれど、それらの個性ある書店の経営模様と、それを取り巻く当時の世相を調べている。

한남서림の創業は、画期的なできごとであったと著者は見ている。それについて、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백두용은 1905년에 드디어 한남서림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이는 종래 이름도 없이 노점 성격을 지닌 서적유통이 자본을 투자한 근대적 경영으로 바뀐 것을 상징했다. 이전에도 서사에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만 대개 서사 주인의 이름을 붙였다. … 그런데 1905년부터 주인 이름을 딴 서사는 드물게 되고, 거의 일반명사를 서사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 (138~139쪽)
この書店の社会的な意義は、決して小さくないようだ。한남서림が朝鮮の古書が流出することを防いだ点について、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한남서림에 있던 많은 고서화로 보아도 일제에 유출・약탈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었다. (151쪽)
この章で扱われている4つの古本屋のうち、미모사は女性の経営する店で、短命ではあったけれど、かなり繁盛したらしい。남만서점と마리서사は、どちらも文人の経営する店で、これも短命だった。ただし、미모사と남만서점は、ファシズム体制の強化によって没落したともみられる。

この章に、興味深い話が手短に紹介されていた。それは、読書家と愛書家とが別のものであるという内容だ。남만서점の오장환は東京に留学していたとき、次のような経験をしている。

오장환은 동경유학 시절에 서적 수집 취미에 대한 감각도 익혔다. 곧 “아내와 자식은 며칠씩 안 보아도 견디나 책은 잠시라도 곁에서 떼 놀 수 없다”는 애서가로부타, 정작 자신이 책은 안 읽는다는 애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독서가와 애서가가 구분될 수 있음을 말한 일화이[다]. (165쪽)
この章でたった4件の古本屋だけを紹介していることに対し、최종규氏は批判していた。彼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대구에는 1951년부터 헌책방을 꾸린 할아버지가 오늘도 부지런히 땀을 흘리고 있고, 인천에도 1951∼52년에 ‘길바닥 헌책방’부터 해서 이제는 번듯한 가게를 꾸린 할아버지가 여러 분 살아 있으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부산 보수동 1세대로서 오래도록 그 골목을 지켜 오던 할아버지 한 분은 지난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 《고서점의 문화사》는 얼마든지 이러저러한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더 살피고 더 헤아렸다면, 테두리를 ‘고서점’으로만 맞추어 놓았다고 해도, 딱딱한 논문을 넘어설 책으로 꽃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딱딱한 논문이라 할지라도 줄거리가 한결 넉넉한 열매를 맺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듭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7233
まあ、そうかもしれないけれど、一部の象徴的な存在に着眼して追っていくという手法は、まず大まかな全体像を捉えるという点で、決して悪いものではない。そのうえで行うべき研究方法は、최종규氏の言っているような“聞き歩き”ではなく、大規模で徹底的な統計調査だ。聞き歩きをして量を増やしたとしても、一部に過ぎないという欠点はそのまま残る。統計調査は個人では無理だから、この本では範囲を限定させて最小限のサンプルを扱っているのだ。そうでもしなければ、この本は完成しなかっただろう。だから、範囲の狭さは批判されるべきものではない。この本とあわせて、최종규氏の調べ歩いたものを読めば、読者は共時と通時の二つの軸から古本屋の存在を見ていくことができるではないか。少なくとも私は、최종규氏の調べた広範囲な現代の古本屋に関する記述と、이중연氏の文献調査による古本屋の大まかな歴史を通して、韓国の古本屋について、立体的な知識を得ることができた。それに、최종규氏はこの本を面白くないと言っているけれど、私は興味深く読んだ。本の印象というのは、人によって違うものだ。

では、次へ移ろう。

4部の「고서 수집의 역사」では、主に韓国語学者양주동と、伝記作家민병산の古書収集を追っている。양주동は主に韓国の文化を伝承する重要な古書を精力的に集めた。민병산は、貧しい生活の中から安価な伝記を精力的に収集し続けた。ただし、その努力は、引越しのときに誰かの手違いでそれらの本をすべて失うことで、むなしく終わることになる。

この章で、私は特に、日本の支配下で韓国の資料を必死に収集した朝鮮学者たちの姿に感銘を受けた。著者は、その時期について「일제강점기 학문의 역사를 쓴다면 1930년대는 조선학(朝鮮學)의 시대로 부르게 될 것이다」(200쪽)と規定し、「조선학 연구자는 아울러 고서 수집가가 될 수밖에 없다」(204쪽)と述べている。

後に共産主義者となって北朝鮮に渡った김태준(1905~1949)は当時、燕巖朴趾源(연암 박지원)の書いたものを集めていた。その困難さを、次のように紹介している。

그는 연암의 글을 모두 모으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수집은 어려웠고 김태준은 문학 고전 분야에서 ‘보급은커녕 수집도 완전치 못해’ 한문학・소설・희곡 등이 완전 “처녀지로 남아 있다”고 했다. (204쪽)
著者も指摘しているように、当時の朝鮮学者は、文献収集家でもあった。そのために、一種の骨董マニアのような性格も帯びていた。朝鮮語学者の양주동(1903~1977)は、次のように語っているそうだ。

…모든 학자가 서적에 대하야 거의 골동벽(骨董癖)을 가지게 되고 수집 마니아[狂]가 되는 것은 진실로 소이연(所以然)이 있는 것이다. (205쪽; 양주동, ‘不可洩의 珍本’, <朝光> 1936년 2월, 95쪽)
その収集活動は、精力的だった。「평양서북 지역에서 책권이나 있다 하는 데는 모조리 찾아 다녔다」(212쪽)というから、その熱心さが伺われる。

彼らの熱心さの背景には、文献資料が海外に流出するのを防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使命感があった。韓国文学者조윤제(1904~1976)の主張が、次のように紹介されている。

경서언해(經書諺解) 종류가 푸대접받고 있지만 외국으로 유출되는 상황이 진행되어 장차 그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하여, 비록 당장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고서라도 관심을 가지고 수집해야 한다고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216~217쪽)
朝鮮語学者の이희승(1896~1989)も、大変精力的な収集家だった。本を買う速さについて、次の逸話が残っている。

방종현이 역어류해(譯語類解)를 한 고서점에서 보고 20분 뒤 구입하러 갔을 때 그 사이에 이미 이희승이 구입해갔다는 일화가 있다. (217쪽)
現在は、韓国語学と韓国文学は別の分野だけれども、当時は同じ조선학(朝鮮学)という垣根の中で、緊密な交流を持っていたという。

당시 어문학 연구와 역사・민속 현구는 조선학이란 같은 뿌리 아래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실제 연구자의 교류나 고서 수집의 관계망도 밀접했다. (219쪽)
5部の「헌책방 삼대」では、朝鮮時代末期から1970年代まで、3代にわたる古本家業を扱った이정환の小説『샛강』を、綿密に検討しながら時代の流れを考証している。いわば、1部から4部までの総まとめとしての章だ。小説というフィクションから事実を読み取ろうという、かなり危険な作業だけれど、作家や近親の手記と、それぞれの時代状況などに照らし合わせて、最大限事実に近いものを探ろうと努力している。

최종규氏はこの章を「아주 살짝 ‘독후감 쓰듯’ 짚으면서 끝맺습니다」と言って、その短さが不満なようだけれど、「독후감」というのは、批判というよりは罵倒に近い。小説というフィクションから事実を抽出しようという試みを一切評価せず、著者の思いつきだと言っているのだ。もちろん、小説を歴史資料とするのは、いかにも危険な方法に違いない。けれども、それを「독후감」のようだ評するのは、言い過ぎではないだろうか。

それはともかく、著者がこの章を書きたかった理由は、朝鮮時代から現在まで一貫して続いてきた古本屋を通して、古本の歴史を探りたかったからだ。けれども、「어떤 까닭인지, 100년 동안 대를 이어 든든히 문화계를 지켜 온 출판사・서점을 보기 힘들다」(252쪽)と述べているように、そのような古本は存在しない。しかし、小説の中に、親子3代にわたって続いた古本屋の話があるのを発見した。著者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그런데 우연히, 정말 뜻밖에도, 헌책방이 3대째 경영되던 경우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정환(李貞桓)의 소설 『샛강』을 들추던 중 헌책방에 관한 기록이 보였다. 소설가 이정환의 이름이나 ‘샛강’이란 소설제목은 들어온 터였지만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샛강』에 이정환이 조부와 부친을 이어 헌책방을 경영하던 얘기가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253쪽)
もちろん、小説から史実を抽出しようとする試みは、危険なことだ。それを承知のうえで、『샛강』が自伝的小説である点に着目し、これが求める情報に関する唯一の資料である点にゆだねているわけだ。次のように説明している。

소설은 작가의 체험을 소재로 할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소설을 허구로 볼 것인가 기록으로 볼 것인가 하는 해석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소설의 구성・서술・표현(그것을 따지는 것은 문학의 영역이다)과 관계없이, ‘있었던 사실’을 다루었다면 그것은 기록으로 풀이될 성격도 있지 않을까? 굳이 기록문학이라 하지 않더라도 그런 풀이의 가능성은 뜻밖에도 크다. 많이 쓰는 표현인 자전적 수필도 그렇다. 필자의 생각이나 사상 따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53쪽)
もちろん私も、この箇所を読んだとき、それまでの慎重で実証的な考察とは打って変わって小説を扱うという冒険に、不安を覚えた。しかし、不安はずっと残りながらも、周辺の史実と照らし合わせながら、小説の記述の正確さを慎重に検討しているので、史実から大幅に足を踏み外してはいないだろうという安心感を読者に与えてくれる。

長い歴史を扱っているので、ここで満遍なく引用することはできないけれど、朝鮮動乱期の記述は目を引く。戦争がいかに本を破壊するかを痛感させられる内容だ。著者は「학자들의 책에 관한 글 가운데 6・25 때 책을 잃어버린 사실이 기록된 경우가 드물지 않다」(302쪽)と述べ、学者たちの本の受難を紹介している。では、古本屋はどうだったろうか。散逸した本がいっぱい出てきて、古本屋は潤うのではないだろうか。そういう疑問が心をよぎるかもしれない。しかし、決してそうではないことを、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어떻게 보면, 책 소장자들에게 전쟁은 수난의 기록이지만, 흘러나온 책들이 많으니 헌책방의 호황이지 않느냐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다. ‘서점’이라고 전쟁이 비켜가지는 않는다. 이겸로(『통문관 책방 비화』)는 서울의 원남서원(원남서원)과 과학서원(과학서원)이 잿더미로 주저앉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전형필이 국보급 문화재를 수집・보존하는 데 중요한 경로가 되었던 저 유명한 한남서림의 많은 책은 전쟁 속에서 “지리멸렬로 대구시장 바닥에 산더미 같이 쌓여 찢어지고 밟히고 흙투성이의 참상이었다”고 한다. 또 통문관에 있던 “2만여 권의 귀중한 전적들도 깨끗이 바람과 함게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전쟁은 그렇게 서점에게도 수난이었다. (303쪽)
それだけではない。ソウルに北朝鮮の軍隊が駐屯してくると、ソウルの古本屋も共産主義一色になった。

북한군에 점령당한 지역에서의 서점 기능은, 좌파사상의 문화적 전파에 철저히 종속되었다. (303쪽)
意外な感じがしたけれど、たしかに北朝鮮に占領されたのだから、ソウルは共産主義の支配下に置かれたわけだ。ソウルと共産主義という取り合わせは、アンバランスに感じられるけれど、当然のことながら、全国民が南方へ避難したわけではなく、地元に残されて北朝鮮に支配された人々もいたわけだ。現在生き残っている人たちは、そういう不愉快な経験を、あまり語ろうとしないけれど、考えてみれば、そのような時代もあったのだ。現在ソウルの古本屋に出回っている古書は、そのような共産主義の支配を潜り抜けて生き残ったのだと思うと、自分の書棚にある古書も、いとおしく感じられてくる。

新刊書もそうだけれど、古本の流通は、好況に潤うこともあるけれど、大体において景気の悪い話に終始している。為政者から弾圧され、古本の調達に困り、消費者に無視され、都市開発のために追い払われる。それらによって何度も壊滅的な被害を被りながら、それでも再生してきたのが、古本の流通だ。この中には、韓国独特の苦難もあるだろうけれど、この苦難は、案外普遍的なものかもしれないという気がした。

この本が2007年3月15日に出たときの一般の評判は、최종규氏によると「이 책이 처음 나올 무렵, 온갖 매체에서 이 책을 여러모로 칭찬하고 소개해 주었습니다」ということで、かなり良かったらしい。최종규氏はつまらなかったと言っているけれど、多くの人には面白かったようだし、私も興味深く読んだ。ただ、驚いたことに、私が先日(2010年1月31日)교보문고で買ったこの本は、初版だ。評判になった本なのに、3年たっても初版が捌ききれない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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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justat | 2010-02-14 19:08 |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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